아트 클로키 감독과 검비를 아시나요?

Art Clokey is a pioneer in the popularization of clay animation, but Koreans don’t know much about him and his works. I recently heard that <Gumby Imagined: The Story of Art Clokey and His Creations> has been published. I personally have a special interest in him because I participated in a special episode of his famous TV series <Davey and Goliath> from 2002 to 2003.

초록색 지우개처럼 생긴 ‘검비(Gumby)’는 미국인들에게 풍요로웠던 1950-6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검비 쇼(The Gumby Show)>에 나오는 캐릭터입니다. 미국 스톱모션의 대표 아이콘인 검비의 탄생 뒤에는 아트 클로키(Art Clokey)라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거장이 있었습니다.

1955년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학생이었던 클로키는 <Gumbasia>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클레이의 물성을 실험합니다. 이후 그는 유동적이고 성형이 쉬운 클레이의 특성을 활용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당시 그가 만든 캐릭터들은 미국 가정에 TV가 널리 보급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지요. 이런 이유로 클로키는 윌 빈튼에 앞서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대중화한 선구자로 애니메이션 역사에 기록됩니다.

아트 클로키는 제게도 의미 있는 이름입니다. 클로키 프로덕션이 1960-70년대에 히트시킨 또 다른 TV 시리즈 <다윗과 골리앗(Davey & Goliath)>의 스페셜 작품에 제가 관절뼈대 제작자로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이 TV 시리즈에 나오는 주인공 ‘다윗’과 그의 반려견 ‘골리앗’은 당시 미국 사회의 기독교적 가치관을 널리 알리고자 만든 캐릭터였습니다.

클로키 프로덕션은 이 TV 시리즈가 종방된지 30년만에 <다윗과 골리앗의 스노우보드 크리스마스(Davey and Goliath’s Snowboard Christmas)>로 다윗과 골리앗을 부활시켰습니다. 이 TV 스페셜을 통해 제가 최초로 미국 스톱모션 장편의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죠. 이 작품의 트레일러는 이 포스트의 맨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트 클로키 프로덕션이 제작한 Davey and Goliath’s Snowboard Christmas의 캐릭터들

2000년대 초반은 제가 뼈대 제작에 필요한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해외 스튜디오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스톱모션의 불모지처럼 여겨지는 한국 출신의 관절뼈대 제작자로서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한국 스톱모션 업계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상황에서 해외 스튜디오들은 갑자기 등장한 한국 출신 관절뼈대 제작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제 관절뼈대를 예전에 사용해 본 애니메이터가 2002년 당시 클로키 프로덕션에 몸담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제 뼈대를 강력 추천했죠. 하지만 클로키 프로덕션 입장에서는 제 뼈대에 대한 나름의 검증 절차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제 뼈대의 내구성을 테스트한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요.

이러한 테스트는 제 뼈대의 내구성이 어느 정도인지 재차 확인해 보고, 스튜디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클로키 프로덕션에서도 테스트 사진을 보고 제 뼈대의 품질에 대해 만족했던 것 같습니다.

Davey and Goliath’s Snowboard Christmas의 주인공 캐릭터에 사용된 실제 관절뼈대 중 일부. 2000년대 초반 clay-mate.com으로 알려졌던 시기에 몰두했던 모듈 뼈대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스노우보드 크리스마스>는 제가 처음으로 참여한 미국 장편 스톱모션이라는 점 외에 제 뼈대 작업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전환점이 된 작품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누구나 쉽게 구입해 사용할 수 있는 규격 뼈대를 만들어 판매하고자 했지만, 이 작품에 참여한 뒤에는 스튜디오들의 각기 다른 니즈에 최적화된 풀커스텀 뼈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관절뼈대 제작자로서 대중적인 시장보다는 하이엔드 시장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죠. 제 뼈대 작업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제게는 아주 의미가 있었던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아트 클로키와 그의 작품에 관한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예전에 클로키 프로덕션과 함께 했던 작업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클로키 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는 아트 클로키의 아들 부부가 클라우드 펀딩으로 <Gumby Imagined: The Story of Art Clokey and His Creations>라는 책을 출간했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아마존닷컴에서 원서를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