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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근교의 가나가와현 근대 미술관 하야마관에서 2016년 7월 23일부터 10월 10일까지 퀘이 형제의 전시가 열립니다. 이 전시는 앞으로 2년 간 일본을 순회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 첫 출발이 바로 하야마입니다. 저는 이 전시가 시작되기 직전에야 퀘이가 일본에 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퀘이 형제의 다음 작품에 들어가는 뼈대 작업 때문에 그들과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는데, 바로 옆 나라 일본에 온다는 것이 아닙니까!

7개월 간의 길고 힘들었던 퀘이 작업이 끝나자마자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어 기뻤습니다. 사실 서너 해 전 뉴욕 MoMA에서 열린 퀘이 형제의 전시를 직접 보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웠거든요. 그럼 올해 여름 휴가는 일본으로 고고! 고맙게도 퀘이 형제가 전시 오프닝에 저를 초대해주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퀘이 형제를 만난 것은 2012년 겨울로, 당시 런던에 있는 그들의 작업실에서 작은 와인 파티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수년만에 다시 친구들을 본다는 생각, 전시에 대한 기대, 그리고 여행의 설렘으로 한껏 들떠 일본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이번 일본 여행 직전에 한국 독립 작가의 관절뼈대 의뢰가 들어와 한창 작업 중이었는데, 사실 진도가 더뎌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행갈 생각을 하니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를 초인적인 힘이 생겨 그 뼈대 작업을 단시간에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퀄리티도 스스로조차 놀랄 정도로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언젠가 다음 기회에 그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써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제껏 만든 뼈대 가운데 가장 가느다란 작품 중 하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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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 형제의 전시 오프닝 당일,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1시간 반 가량 시외선을 타고 가나가와역에서 내린 뒤 버스로 갈아타고 가나가와현 근대 미술관 하야마관에 도착했습니다. 왜 첫 전시를 도쿄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할까 의아해 했는데, 하야마에 가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야마는 해수욕장과 고급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더군요. 일본 왕실 전용 별장도 있다고 합니다. 해변가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바다를 향해 탁 트인 전망이 참 멋집니다. 그리고 퀘이 형제의 전시도 이에 못지 않게 훌륭한 전시였습니다.

The quays exhibition opening

이번 전시는 내용상 크게 영상, 세트,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으로 나뉩니다. 전시장 곳곳에는 퀘이 형제가 작품에서 사용했던 여러 세트가 놓여져 있고, 그들의 영상 작품이 중간중간 설치되어 있는 몇 개의 대형 스크린에 나뉘어 상영됩니다.

사실 퀘이의 작업을 대형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좁은 컴퓨터 화면으로 그들의 작품을 볼 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퀘이 형제가 창조한 거대한 환상 세계로 관객이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작품의 어둡고도 기괴한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압도되었습니다. 퀘이 작품을 대형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전시에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퀘이 형제는 이제까지 장단편 영화 외에도 여러 가지 작업을 해왔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들이 작업한 상업 광고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퀘이 형제와 상업 광고의 조합이 이질적이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신선하고 독특한 작업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퀘이만의 스타일이 물씬 풍기는 광고들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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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퀘이 형제의 작품을 보다가 그들이 프레임 안의 움직임을 붓처럼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퀘이의 작품 안에서 그렇게 움직이는 다양한 요소 중에서도 제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퍼펫입니다. 퍼펫의 움직임이야말로 제 직업이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여년 전 퀘이의 런던 스튜디오를 처음 방문했을 당시 그들이 만든 퍼펫 실물을 보고 전율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 퍼펫에 제가 만든 금속관절 뼈대가 들어가는 거니까요. 이번 전시에서도 제가 가장 주목한 것은 세트와 퍼펫이었습니다.

전시된 세트 가운데 일부에는 큰 직경의 돋보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돋보기를 통해서 관객은 퀘이 작품 속의 몽환적인 장면을 직접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마치 작품 속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면서 그 안의 퍼펫이 조금씩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큰 볼록렌즈의 굴절로 인해 왜곡된 이미지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고나 할까요. 아쉽게도 전시장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는 게 금지되어 있어서 보여드릴 수가 없네요.

영상과 세트 외에도 퀘이 형제는 다양한 일러스트레이션과 프로덕션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여러 분야에서 창조적인 재능을 발휘하는 퀘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미처 예상치 못한 큰 수확이었습니다.

오프닝 행사 이후 전시를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이 미술관은 폐관 시간이 오후 5시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한국처럼 미술관 폐관이 오후 7,8시일 것이라 생각한 게 제 불찰이었죠. 게다가 오프닝 첫날이라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전시를 집중해서 보기가 어려워 좀 아쉬웠습니다. 나중에 또 일본에 갈 기회가 생기면 다시 한 번 이 전시를 보려고 합니다.

제가 금속관절 뼈대 전문가(Armature Specialist)로 퀘이 형제의 작업에 참여한 지가 벌써 십여 년이 넘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작품에 참여하는 스탭의 입장일 때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그들의 오랜 팬이자 친구로서 오프닝에 참석하여 전시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물론 뒤풀이에 가서도 신나게 놀았지요. 이 전시가 2년 동안 일본을 순회한다고 하는데,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나중에 한국에도 들어올 수 있었으면 합니다.

MoMA 뉴욕에서는 이제까지 애니메이션 관련 전시가 딱 세 차례 열린 바 있습니다. 그 중에서 Pixar전과 팀 버튼 감독의 전시는 한국에서 열린 적이 있는데, 과연 퀘이 형제의 전시도 국내에서 볼 수 있을런지.. 이들의 어둡고도 기괴한, 그러면서도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세계를 여러분이 언젠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합니다.

아래는 퀘이 형제가 일본 전시회 오프닝에서 공개 라이브 페인팅 작업을 하는 모습과 인터뷰를 담은 영상입니다.